일본에서의 일상 /사람들..

약식(약밥) 때문에 남편이 삐쳤다

동경 미짱 2022. 5.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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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내가 알고 지내는 친구 , 동료, 지인, 한국 사람 , 일본 사람 통 들어서 가족 외에 제일 좋아하는 사람!
나에게 그런 사람이 있다
한국에서 나의 풋풋한 20대시절을 함께 보낸 선배인데 무슨 인연인지 그 선배도 나도 일본에 그것도 일본의 많고 많은 곳 중에 동경에 살고 있는 인연이니 이게 보통 인연인가 싶다
한국에서도 그저 알고 지냈던 그렇고 그런 선배가 아닌 서로 집을 오갈 정도로 많이 친한 선배였는데 외국 생활까지 같이 하고 있으니 전생이 정말 있다면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도 있었을 것 같아
그때 선배에게 유학생인 일본인 남친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 그 남친 아니 지금은 남편인 형부는 엄청 무지 한국말을 잘했었다. 우리 집 자기야의 한국어 실력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
내가 일본에 들어 온후 어쩌다 다른 지인을 통해 선배도 동경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게 만났었다
20대 초반에서 오십을 넘기며 30년 지기 선배이다
예전엔 두어달에 한 번씩 만나서 식사도 하고 수다도 떨고 했는데 코로나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코로나라도 만날 사람은 다 만나고 사는데 같은 동경에 살면서도 만나지 못한 이유는 그 선배는 시어머님이랑 함께 살고 있고 시어머님은 굉장히 보수적인 분이라 평소에도 며느리가 밖으로 돌아다니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데 코로나 시대이니 시어머니 당신 자신도 집콕을 실천하시니 며느리가 후배 만나겠다고 나갈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 시 누이가 가까이 사는데 지난 2년간 시누이 조차도 집 안에 들이지 않으시고 일이 있어서 시누이가 와도 현관에서 이야기하고 바로 돌려보내셨다고 한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그렇게 2년 이상 만나지 못하다가 드디어 오늘 만나기로 했다
그것도 1주일 전부터 스케줄 맞춰가며 잡은 약속이었다

선배를 만난다고 내가 많이 좋았나 보다
선배에게 뭘 주고 싶으신 한데 선배에게 뭘 줘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는데 선배네는 엄청 부자다
땅값 비싼 동경의 땅 부잣집이라 먹는 것도 평범한 우리 집 과는 달리 좋은걸 먹고 한마디로 부족함이 없는 지라 주고 싶은 맘은 있어도 그 집에선 넘쳐나니 …

하지만 그런 선배에게도 내가 줄게 생각났다
선배의 시어머니는 전형적인 일본분이신지라 선배는 집에서 한국 음식을 잘 만들어 먹지 못한다
만들어 먹는다고 시어머니가 뭐라 하시는 건 아니지만
만들어도 시어머니랑 아이들은 먹지 않고 남편이랑 둘이서만 먹게 되니까 결국은 만들어 먹게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선배에게 줄 선물로 내가 만든 건

바로 요거!
영양 찰떡이다
지난여름 어렵게 구해 말려두었던 호박이랑 여러 종류의 콩을 넣고 만든 영양찰떡

일본은 찹쌀가루가 있긴 하지만 습식이 아닌 죄다 건식 가루다
200그람 한 봉지를 사다가 만들었더니 생각보다 양이 몇 개 안 나왔다
저 크기로 자르니 딱 8 조각이 나왔다
나 하나 먹고 우리 집 자기야 하나 주고
6 조각은 선배에게 줄 선물


떡을 만들고 난 후 늦은 밤
다시 부엌에서 뭔가를 만드니 우리 집 자기야가 뭘 만드냐 궁금해한다
일단은 비밀 ㅋㅋ

아몬드 , 땅콩, 호두 , 캐슈너트, 건포도에 해바라기 씨와 호박씨까지 아! 제일 중요한 대추!
집에 있는 견과류는 죄다 넣었다
호박씨는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할 일 없고 심심해서 직접 호박씨를 말려서 껍질을 벗겼던 거다( 내 정성이 듬뿍 든 호박씨임을 강조하고 싶다 )

몇 년 만인지 기억도 안 나는 약식을 만들었다
우리 집 자기야는 한국에 살 때 약식을 좋아했었다
그래서 일본으로 오고 나서도 옛날엔 가끔 만들어 주었었는데 최근 10년 정도는 약식을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안 만들다 보니 약식이란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 같다

또다시 이 늦은 시간에 뭘 만드냐는 자기야에게 약식을 만든다니 그게 뭔데?라는 반응
“ 약식 자기 좋아하는 거잖아 몰라? 잊어버린 거야? “ 라며 약식을 보여 줬더니
그제야 생각난 듯 진짜 오래간만이라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었다며 이게 이름이 약식이었던가 … 하는 반응

너무 오랫동안 안 만들었나 ㅎㅎ

뭘 이렇게 많이 만들었냐는 자기야에게 내일 선배 만나니까 선배 줄려고 만들었다고 했더니
자기야 : 전부다?
: 아니 몇 개는 남겨 둘 거야
자기야 : 00 씨 줄려고 만든 거야?
나한테는 안 만들어 주면서 …
: 아니 자기도 줄 겸 겸사겸사 만든 거지 …
자기야 : 아닌 거 같은데 ….

아이고 이 남자 지금 선배를 질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ㅋㅋㅋㅋ
물론 우리 집 자기야도 그 선배를 잘 알고 있고 나와 선배의 사이를 잘 아는지라 진심이 담긴 질투는 아니지만 나에게 자기가 서운해서 살짝 삐쳤다는 걸 어필하는 이 아저씨
요럴 땐 솔직히 살짝 귀엽다 ㅎㅎ

오늘의 약식은 대 성공
간도 딱 맞고 질척하지도 않고 만족 만족!

물 조절이 잘 된 것 같다
우리 집 자기야에겐 다음번 내가 쉬는 날에 그날은 오직 당신만을 위해 만들어 주겠노라고 달래고
영양 찰떡 하나와 약식은 2개 남겨 주고 나머지는 전부 선배에게 선물

2년 만에 만나 선배는 여전했고
2년 만의 수다이니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하지만 워낙 서로 잘 아는 사이인지라 2년의 공백을
느끼지 못하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즐거운 시간은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지 …
9 시 반에 만나 3시 반까지 장장 여섯 시간을 쉴 새 없이 떠들었는데도 부족한 이 두 여자의 수다의 엄청남 메모리가 놀랍기만 하다

헤어짐의 아쉬움에 이젠 좀 더 자주 만나자 약속을 했다
6 시간의 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쓰잘데기
없는 얘기뿐이었지만 그게 왜 그리 좋은지 ….
너무 좋았다
오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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