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엄마가 차려 준 내 생일 상이라…
제목만 들으면 뭔가 굉장히 사연이 깊을 것 같다. ㅋㅋㅋ
도대체 얼마나 깊고 애달픈 사연이 있으면 30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엄마와 함께 생일을 같이 할 수 없었을까?
사연은 간단하다
성년이 되어서 본가를 떠나 혼자서 서울살이를 했고
그 이후 일본으로 건너와 27 년을 살았기 때문이다
30년이라고 했지만 그러고 보니 내가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서기 한지는 34 , 5년은 더 된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막내딸에게
내가 서울에서 혼자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이제 그만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 가까이에서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아라고 했지만 막내딸은 아빠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반대를 꺾고 기어이 일본으로 와서 살고 있으니…
울 엄마는 내가 한국에 갈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한테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서 ..다
무슨 말이냐고 왜 해 준 게 없냐고 하면
언니랑 오빠는 가까이 살고 있으니 언니가 입덧할 때 이것저것 챙겨 주고 보약도 해 먹였지만 나에게는 해 주고 싶어도 해 줄수가 없었고 지금도 언니와 오빠에게는 김치도 담아 주고 밑반찬도 만들어 주고 그런데 너에게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라고….
그게 엄마가 나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선택한 삶이기에 엄마가 나에게 미안해할 게 아니라 엄마가 챙겨 주고 싶어도 챙겨 줄 수 없게 살아온 내 탓인 것을 엄마는 당신 탓을 한다
이번 한국 방문 기간 중 마침 내 생일이 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사실 내 생일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한국에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엄마는 음력 생일을 챙겼고 일본에 살고 있는 나는 언제부턴가 양력 생일을 쓰고 있다
당연히 이번 한국 방문 기간 중 내 생일은 엄마 기준 나의 음력 생일이 아닌 일본 기준 내 양력 생일이었다
생일 전날
엄마 내일 내 생일인데라고 했더니
너 생일 아직 멀었잖아 엄마가 너 생일도 모를까 봐 ..
아니 일본에서는 전 서방과 히로가 매년 바뀌는 내 음력 생일을 챙기기 너무 헷갈린다고 해서 양력 생일로 하고 있거든 그래서 내일은 내 양력 생일이야

그렇게 한 마디 던지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우리 엄마 아빠 굉장히 분주하셨다
엄마는 미역국 끓이고 아빠는 갈치를 굽고 ㅎㅎㅎ

30 몇 년간 차려 주지 못했던 막내딸이 그게 음력이든 양력이든 생일이라고 하니 막내딸은 자고 있는 이른 아침 엄마랑 아빠랑 분주하게 막내딸 생일 상을 차려 주신 것이다

나는 고기가 물에 들어간 것은 아예 먹지를 않는다
설렁탕 곰탕 육개장 기타 등등
그게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닭고기는 제외! 닭고기는 너무 좋아 ㅋㅋㅋ 삼계탕 너무 좋아 좋아)
육고기가 물과 맛난 것은 입에도 대지 않는 막내딸 취향을 잘 아는 울 엄마 소고기가 아닌 북어 넣고 들깨 넣고 고소하니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내 취향이 맞춰 내가 어릴때도 울 엄마는 내 생일 미역국은 소고기가 아닌 홍합같은 조갯살이나 북어를 넣고 끓여 주시곤 했었다

깊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던 30년 만에 엄마가 차려줬다는 나의 생일상은 깊은 사연이 아니라 별 시답지 않은 사연 덕분이었다
그래도 남편이랑 아들이 챙겨 주는 생일상이 아닌
엄마 아빠가 차려준 생일상이 더 좋았다
(우리 집 자기랑 히로에게는 비밀로 해 주세요!)
평소에 아침밥을 잘 챙겨 먹지 않지만 엄마가 차려준 생일상은 남김없이 맛있게 먹어 치웠다

히로에게서 온 생일 축하 문자
그래도 엄마가 생일이란 걸 잊지 않았구나…
30년 만에 엄마가 차려 준 생일상
반대로 내가 일본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던 27년 동안 우리 집 자기야 없이 혼자 보내는 생일은 처음이다
이번 한국 방문은 히로의 어학원 입학을 위한 방문이었기에 어쩌다 보니 11월 말에 오게 되었고 그 덕분에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미역국을 먹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내 기준으로 봐서
30 년 만에 엄마가 차려준 생일 상을 받은 막내딸이지만 엄마 기준으로 보면 30년 동안 엄마 생일 상을 내 손으로 직접 차려 드린 적은 없다
아마도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울 엄마 생일은 12 월이다
내 직업은 크리스마스 시즌인 12 월에는 절대 휴가를 낼 수 없는 케이크를 만드는 직업이다 보니 12월의 한국 방문은 내가 퇴직을 하지 않는 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엄마 생일을 오빠랑 언니에게 모두 떠넘기고 있는 막내딸 ㅠㅠ
부모님 곁을 떠나 멀리 외국에 살고 있다는 자체가 불효라는 것을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었다
이제는 내가 잘 사는 게 효도라고 나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엄마 아빠 나 잘 살고 있어. 그리고 앞으로 더 잘 살께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나 여기에 .. > 일본 시댁과 한국 친정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 어머님 생신 (6) | 2026.01.18 |
|---|---|
| 오빠랑 언니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 올리기 (20) | 2026.01.12 |
| 일본의 눈으로 먹는 화려한 설 음식 오세치 (5) | 2026.01.01 |
| 시댁에 가자고 ? (8) | 2025.12.30 |
| 90을 바라보는 고모의 집밥 (11) | 2025.12.11 |
| 서울 가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일본인 남편의 최애 음식 (4) | 2025.12.02 |
| 시댁에 4일을 머물면서 밥 한끼 차리지 않은 며느리 (193) | 2025.08.27 |
| 미식의 도시 나고야의 명물 히쯔마부시( 장어 덮밥) (59) | 2025.08.23 |
| 시댁 가는 길 (15) | 2025.08.21 |
| 집으로 돌아 오는 멀지만 즐거운 길 (67) | 2025.04.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