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못할것 같았던 TV 없는 생활 일년째
일본에 와서 살게 되면서 당연히 살아가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해야 했고 그런 나에게 제일 큰 영향을 끼친 일어 선생님을 꼽으라면
단연 TV 다
일본에 와서 아는 지인들도 없는 상태에서
남편은 회사에 출근을 해 버리고 나면
하루종일 혼자 있어야 하는 생활
어쩔 수 없이 혼자 있을때 켜 두기 시작했던 TV는 나에게는
일본 생활에 대한 간접 경험을 그리고 나의 부족한
일본어를 공부하는 좋은 교재가 되었었다
그렇게 TV를 보던 안 보던 하루 종일 켜 두는 게 습관이 되었었다
거실을 벗어나 부엌에서 요리를 할때도 TV는 켜진 상태였으니
TV를 보기 위해서 켜 두는게 아니라 그냥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 생활은 일본 생활 20년이 지난 최근까지 이어져
집에 있는 시간은 당연히 켜 두었던 TV를 과감하게 없애 버렸다
아니 없애 버린건 아니다
고장도 나지 않고 짱짱한 TV이니 버리긴 아깝고
또 혹 맘이 변해 TV를 보고 싶어질지도 모르니 옥탑방으로 옮겨 두었다
나에게 TV를 켜두는 건 그냥 습관이었다
혹자는 일본 드라마가 재미있다고 하는 이들도 있더라마는
정작 일본에 사는 나는 일본 드라마를 제대로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리고 넘쳐나는 일본의 버라이어티 방송은 내 취미가 아닌지
전해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쩌다 일본에 와서 살고 있지만 일본 드라마나 일본 음악 일본 방송은 내 취향이 아니다
난 별 관심을 못 느낀다
그런저런 이유로 내가 일본에 산지 20년이 넘었지만
일본 연예인들 이름을 성부터 이름까지 풀 네임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열명도 안된다
나에게 TV는 그냥 습관이니까 TV없는 생활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런데 문제는 우리집 두 남자인데
아들 녀석인 히로는 버라이어티와 개그 프로를 좋아해서
못 보는 날은 녹화를 해 두고 볼 정도인지라 아들 녀석의 반대가 예상되었었다
그리고 우리집 자기야는 스포츠 프로를 즐겨 본다
스포츠라면 종목을 가리지
않고 다 좋아 하는데
특히나 테니스는 4대 대회가 시작되면 밤을 새우고라도 봐야 하는 남자다
우리 집 두 남자는 TV 없이는 못 사는 남자들이라 생각했기에
TV 없는 생활은 늘 마음만 있었다
그런데 일 년 전 우리 집 자기야가 갑자기
" TV 안 봐도 되지?"
라고 먼저 말을 꺼내는게 아닌가?
"나야 당연히 괜찮지 그런데 자기가 TV 없이 괜찮겠어?
테니스 꼭 봐야 하잖아?
너무나 간단하게 우리 집 자기야가 하는 말이
" 없음 안 보면 되지 "
그렇게 우리 집은 TV를 다락방으로 옮겨버렸다
TV 없는 거실
그 결과
얼굴 마주 보고 앉아 홈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이 늘었다
TV가 없는 거실에 8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식탁이 자리 잡았다
달랑 세 식 구인 우리 집 가족 구성원을 보면 부담스러울 정도로 너무 큰 식탁이지만
난 4인용 식탁이 늘 작게 느껴졌다
거실에 커다란 식탁을 놓는게 나의 로망중 하나였었다 그렇게 큼직한 식탁을 놓고 나니 우리집은 달랑
세 식구이지만 저녁에 TV 앞이 아닌 커다란 식탁에 앉아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예전에 식사를 하면서도 TV를 켜 두고 TV로 시선을 뺏길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식사 시간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레 식탁에 모여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식사 후에 꼭 가족이 모여 티 타임을 즐긴다
(커피가 주를 이루지만 ...)
TV를 없애고 나니 매일 간식을 곁들인 티 타임으로
코로나로 인한 운동 부족의 영향도 있지만 우리 집 가족 전원 몸무게가 늘었다
차만 마시면 될텐데 꼭 간식을 곁들이는게 문제다
몸무게와 더불어 가족 간 대화도 늘었다
TV가 없어도 요즘은 죄다 스마트폰을 보니 별 차이가 있을까 싶은데
맞다
각자 스마트폰 보는 시간이 많긴 하다
하지만 예전엔 스마트폰은 TV를 켜 두고도 할 때는 했으니까
TV를 없애고 나서 딱히 그 시간이 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식탁에 얼굴 맞대고 모여 앉아 있는 시간은 확연히 늘었고
그만큼 가족 간 대화가 많이 늘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커피타임 시간엔 당연히 들려오던 시끄러운 TV소리가 아닌 음악이 흐른다는 것이다
음악 선곡은 우리 집 자기야 취향이 70% 히로 취향 30%다
원래 우리집 두 남자는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TV가 있던 시절엔
음악은 개인적으로 이어폰으로 들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 종일 음악을 틀어 놓고 산다
없으면 절대로 안될 것 같았던 TV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TV를 꺼 내놓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년이란 시간을 TV 없이 살았다
나랑 우리 집 자기야는 앞으로도 여전히 TV 없이 살아도 아무 문제없다이고
히로에게 물어보면 TV가 없는 것보다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은 하는데
물어보지 않으면 또 그렇게 아무 말이 없다
당분간은 우리 집은 없는 생활을 계속할 것 같다
TV가 없어서 딱히 불편한 점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아! 굳이 찾으라면 한가지 있긴 하다
가끔씩 히로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고
소리를 꽥꽥 지를 때가 있다
솔직히 지금 이 블로그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히로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끄럽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