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만들어서 하는 나란 여자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일어나 출근하고 열심히 일하고 퇴근해 마당에 나가 익어가는 블랙베리랑
라즈베리 한 움큼씩 따 주고 마당에 풀도 두어줌 뽑아주고
그리고 가족들 저녁 준비를 하고....
우리 집 자기야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매일매일 얼굴 맞대고
온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여유로움...
2년여에 걸친 코로나 사태로 남들은 수입이 줄어서 걱정이라 하는데 우리 집은 감사하게도
오히려 나도 우리집 자기야도 수입이 늘어서 코로나로 인한 마이너스 요인은 하나도 없으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평화롭고 풍요롭고 여유로운 너무나 감사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는데
그런데 마음 한켠 어디가 휑하다
코로나 때문에 집 회사를 왔다 갔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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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은 한참 수국 철이다
수국을 유달리 좋아하는 일본인들 ...
주택가인 우리 동네는 한집 건너 한집엔 수국이 심어져 있을 정도로 수국이 참 많은 동네다
우리 집 수국도 참 이쁘게 폈다
퇴근해 집에 와도 할 일이 없으니 손바닥 만한 마당에 나가 풀을 뽑고 또 뽑고
마당을 쓸고 쓸고 또 쓸고 그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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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기분 전환이 될까 싶어서
마당에 핀 꽃을 꺾어다 식탁 위에 올려 두곤 한다
그러곤 멍하니 꽃을 바라보며 " 참... 이쁘다...."를 독백처럼 속삭여 본다
요즘 나의 권태감의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걱정이 없어서 인 것 같다
평화로운 일상에 취해 무엇을 시도할 의지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맘도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마누라 속 썩이는 일 없는 꽤 다정한 남편에
고집은 꽤 세서 맘에 안 들지만 요즘 애들 같지 않게 꽤 착하고 성실한 아들 녀석에
장남이지만 아직은 자식들에게 기대려 하지 않으시는 건강하신 시부모님
무엇보다 아픈 곳 하나 없이 감기도 안 걸리는 너무나 건강한 울 가족..
우리 집 자기야도 올 해도 연봉 협상에서 인상을 받아 냈고
나도 회사에서 외국인이지만 일본인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며 인정을 받고 있고
내 기대에 조금 못 미치긴 했지만 무사히 대학에 들어간 아들 녀석
이렇게 나열해 보니 공과 사 모든 면에서 세상 아무 걱정거리가 없는데
근데 뭐가 문제인데? 세상 팔자 편한 여자 구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문득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현재의 평화로움에 젖어 몇 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내가 왜 이리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나 하는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50년을 살아왔고 앞으로 내게 남아진 시간은 내가 보내왔던 50년보다 훨씬 더 짧을 텐데
80까지 산다 해도 앞으로 30년밖에 안 남았는데
내가 왜 이리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나 하는 그런 생각
뭐라도 배울까? 근데 뭘 배우지?
뭔가 내가 푹 빠질 만한 게 없을까?
영어 공부를 시작해 볼까 하는 맘이 예전부터 있긴 했지만 영어 공부를 해야 할 목적이 없으니
맘만 먹을 뿐 시작할 엄두도 안 난다
시골에 조그만 땅 하나 사서 농사나 지으러 다닐까 아님
요즘 유행한다는 차박 여행을 취미로 삼아 볼까?
쉬는 날마다 차박으로 일본 전국을 돌아볼까?
아님 남들 다 한다는 유튜브나 해 볼까?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생각만 많고 쉬이 맘의 결정을 못 내리고 왔다 갔다 하니
오히려 권태감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신체적으로 갱년기가 왔을 땐 운동으로 극복을 했다
집안일하랴 일 하랴 워킹맘으로 살면서 운동을 등한시했었다
그러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갱년기 증상을 왔고 다행히 운동을 하면서
아주 아주 즐거운 갱년기를 보냈었다
근무 마치고 아무리 피곤해도 운동을 하면서 오히려 힘이 나곤 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운동은 계속하고 있지만 전처럼 즐겁지가 않다
지금은 즐거움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의무적으로 운동을 할 뿐...
신체적은 갱년기는 운동으로 극복을 했고
이젠 지금 내 맘을 혼란스럽게 하는 정신적 갱년기(그냥 내 맘대로 지금 상태를 정신적인 갱년기라 칭해 본다 )
는 무엇으로 극복을 해야 할까?
내가 재미있게 푹 빠질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게 뭐가 되었건 뭔가 새로운 변화를 가져와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냥 이 평화로움과 행복함에 민족하고 안주하면 안 되는 걸까?
이런 글을 쓰면서 혼자서 피식 웃는 나를 발견!
참 별스럽다
걱정도 만들어서 하는 나란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