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만 알고 싶었는데 남편이 이 맛을 알아 버렸다
이번 여름도 엄청 더울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매일같이 내 핸드폰에는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열사병 주의 긴급 재난 속보의 알림이 울려 퍼지고 있다
하긴 지진 속보보다야 낫긴 하지만 그래도 덥긴 너무 덥다
이렇게 더운 주말에도 우리집 자기야는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자며 해가 지기만을 기다린다
우리 집 마당은 정남향이라서 해가 떠 있는 시간엔 위험해도 너무 위험하다
해가 져도 더운 건 마찬가지
아예 선풍기를 들고 나가 틀어 놓고서 하는 바비큐
이렇게 까지 해서라도 바비큐를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 집 남자는 고기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웃도어 파라서 고기를 굽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긴다
매주 미니 캠프를 하는 듯한 그 느낌을 즐기는 것 같다
사실 나는 바비큐 하는 것 자체는 떙큐다
왜냐하면 주말 아니 딱히 주말이 아니라 평일에도 집에서 밥을 먹을 땐
온전히 나의 일이지만 바비큐를 하게 되면 내가 할 것은 하나도 없다
장만 봐 주면 (봐주면이라 하지만 같이 장을 본다. 물건은 내가 고르고 짐은 자기야가 들고..)
나머지는 전부 우리 집 자기야가 하니까 나는 그냥 다 구 우거진 고기 맛있게 냠냠냠 먹어 주기만 하니
어찌 보면 오늘은 바비큐 안 한다 할까 봐 살짝 걱정이 될 때도 있다 ㅎㅎㅎ
옥수수 철이라서 옥수수고 구웠다
삶아 먹는 옥수수도 맛이 있지만 숯불에 구운 옥수수의 풍미가 정말 좋다
오늘의 나의 최대 기대는 고기가 아닌 바로 이 가래떡이다
지난번 한국 갔을 때 엄마가 챙겨 주셨던 가래떡을 구웠다
아무 특별한 맛이 없는 가래떡은 우리 집 자기야가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가래떡은 온전히 내 차지가 될 것 같다
이런 건 너무 좋다
나눠 먹지 않아도 되니까 전부 내 거다 ㅋㅋ
그래도 예의상 " 한 입 먹어 볼래?" 라며 한 입을 권했고
가래떡 한 입 베어 물고는 우리 집 자기야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 맛있네 "라고..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는 " 괜찮네.. 난 됐어 자기 먹어 " 였는데
뭐 역시나 예의상 한 대답 일려니 하고 자기야겐 한 입만 주고 나머지는 나 혼자 맛있게 냠냠냠
자기야가 가래떡을 또 하나 올렸다
나 : 떡 하나면 충분해. 나 안 먹을 거니까 굽지 마
자기야 : 나 먹을 거야
헐... 맛난 고기 두고 별 특별한 맛도 안나는 소박한 가래떡을 먹겠다고?
진짜?
아마도 가래떡을 그냥 해동해서 줬다면 우리 집 자기야는 한 입만 먹고 끝났을 것 같다
구워서 먹어 보니 겉은 바삭 속은 촉촉이라 꽤 맘에 들었나 보다
나의 실수 ㅠㅠㅠ
한국에서라면 가래떡을 얼마나 먹건 무슨 상관이냐 마는 외국에서 가래떡은 귀하고 귀한 존재
냉동실에 고이고이 모셔 두었다가 나 혼자 하나씩 꺼내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 맛을 우리 집 자기야가 알아 버린 거다
알리고 싶지 않았던 나만 알고 있고 싶었던 그 맛을...
심지어 내 거보다 더 노릇하게 구워졌다
다음번 바비큐할 때 "가래떡 없어?:라고 물어볼 것 같다
이제 딱 4개밖에 안 남았는데 ㅠㅠㅠ
나만 알고 싶었던 그 맛을 우리 집 자기야가 알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