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에서의 일상 /주저리 주저리

타향살이 몇 해던가..

by 동경 미짱 2023. 9. 30.
반응형
728x170

지금 한국은 추석연휴 중이겠지 

이번 추석 연휴는 유난히 길다고 하던데...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일본은 추석이 아니니까 

(오봉이라 해서 일본식 추석이 있긴 하지만 한국처럼 음력이 아닌 양력이니다 )

추석이라고 한국으로 훌쩍 떠나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가정 주부도 아닌 직장이라면 게다가 주부업까지 겸업을 하고 있다면 더더욱이나..

훌쩍 떠나기에는 걸리는게 너무 많다 

마당에 가을 장미가 피려고 한다 

추석에 한국 방문을 못 한 서운한 마음을 마당의 꽃을 보며 잠시 위안을 삼아야 할까 보다 

 

직장 다니랴 살림하랴 사는 게 바빠서 사실 음력 날짜 챙겨가며 추석이라고 

챙길 여유가 없다 

뭐가 그리 바쁜지 아니 바쁜 척하느라 하루가 후다닥 지나가 버린다 

정말 다행인 게 일본 생활이 나랑 잘 맞는지 지금까지 향수병이란 것 없이 평탄하게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뭔가 다른 느낌이랄까 

나이가 드는 걸까 

지금까지와는 달리 추석이라니까 맘이 싱숭 생숭하다 

내가 부모님 그을을 떠나 산지 몇 년인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계산을 해 보았다 

31년 전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 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25년 전 서울을 떠나 일본 생활을 시작했으니 타향살이가 31년째다 

그나마 서울 살 때는 추석이나 설엔 고향으로 내려갔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당시에 귀성은 정말 전쟁이었다 

때론 고속버스로 때론 무궁화를 타고..

고속버스를 타면 강남 터미널에서 만남의 광장 까기 가는데 1시간 가까이 걸릴 때도 있었다 

차를 탄게 언제인데 아직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머나먼 길

무궁화호를 타고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좌석은 포기하고  입석으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꽉 채운 상태에서의 귀성길 

그래도 그때는 그렇게라도 해서 내려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내 사주에 역마살이 끼어도 단단히 끼었나 보다 

난 3남매의 막내로 정말 귀염 받고 자랐다 

집을 벗어 나야겠 다는 빨리 독립해야지 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집에 있으면 엄마 아빠 사랑받으며 부모님 그늘 안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31년 전 처음 집을 떠나고 나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아빠가 서울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지고 이젠 내려와서 선이나보고 결혼이나 하라고 

선 자리까지 알아보고 당장 내려오라고 했지만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는 막내딸이었다 

절대 일본으로 시집보낼 수 없다고 반대하던 아빠의 똥고집을 당당하게 꺾은 막내딸이었다 

오빠도 언니도 아빠 말을 거스르지 못했었는데 철 부지 막내딸은 아빠 무서운 줄을 모르고 

내 맘대로..

하긴 31년 전 오빠랑 언니는 아버지라 부르는데 나만 아빠라 불렀었다 

그게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도 난 여전히 아빠라 부른다 

울 언니는 단 한 번도 대구땅을 떠나 살아 본 적이 없다 

지난 4월에 한국에 갔을 때 언니가 그러더라 

자기는 대구땅 떠나면 못 살 줄 알았다고 떠날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자매라도 어찌 이리 다른지...

 

타향살이라..

나도 몰랐다 

내가 어린 나이에 그렇게 빨리 그리고 이렇게 오랫동안 타향살이를 할 줄은...

이젠 타향살이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내 삶의 터전이요 

나의 고향이라 생각하며 살아야겠지만 어릴 적 아니 젊었을 때 못 느끼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란 게  이제 느껴지는 건  나이 탓이려나...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