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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집에서 먹기

어쩌다 보니 일본에서 원추리 김치 전도사가 되었다

by 동경 미짱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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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천지가 원추리가 있는 곳을 안다 

게다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공원도 아니고 조용한 동네 오랜 토박이들만 아는 청정 무공해 지역이다 

상상이 안 가지만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 곳이 이곳 동경 변두리엔 있다 

하지만 매년 원추리를 보면서도 그게 원추리인줄을 몰랐다 

몇 년 전 울 회사에 한국인이 들어왔는데 그녀는  나물 뜯는 걸 좋아한다 

"언니야 나물 뜯으러 가자" 라고 하는데  나도 그녀도 도시 출신이라 뭘 알아야 뜯지

분명 동경 변두리인 이 곳은 자연이 너무나 풍부하고 인공 공원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공원이 많은데 풀인지 나물인지 모르는 무식한 두 아줌마 ㅠㅠㅠ

내가 아는  봄 나물은  냉이, 달래, 쑥, 미나리 정도다 

머위나 질경이랑 민들레도 먹는다는 걸 알지만 안 먹어 봐서 뜯어다 먹을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먹을 줄 모르는 나에겐 그냥 잡초일 뿐....

 

그런데 그녀가 " 언니야 우리 나물 뜯으러 가자, 나 그런 거 좋아한다 "라고 하길래 

봄에 먹는 산나물, 들 나물 등등 검색을 해 봤더니 원추리란 게 있는데 

어? 이 꽃 많이 보던 건데 이게 원추리? 이걸 먹는다고?

그렇게 2년 전쯤부터 봄이 되면  원추리를 뜯으러 간다 

올봄에는 벌써 세 번이나 뜯어 왔다 

 

 

첫 번째는 조금만 뜯어다가 무쳐 먹고 된장국에도 한번 넣고 끓여 먹었다 

사각사각한 식감이 진짜 좋다 

두 번째는 너무 많길래 욕심 내서 좀 많이 뜯어 왔었다 

지인들 여기저기 좀 나눠 주고 그래도 남길래 김치를 만들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원추리 김치를 만들었었다 

먹어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원추리 김치를 만들게 된 이유는 그냥 많아서였다 

그런데.. 

어라? 맛있다 원추리 김치를 당연히 먹어 본 적이  없는 일본인인 우리 집  자기야도

맛있다면서 너무 잘  먹길래 올 해도 김치를 만들었다

 

김치라면 생 채소로 담근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원추리는 독성이 있어서 

한번 데친 후 물에 담가서 독성을 빼 주어야 한다

삶은 원추리로 김치를 담근다라..

그런데  원추리 김치를 먹어 보면 고정관념을 뻥 차버려야 한다

분명 한번 데친 후 만든 김치지만 식감이 사각사각 참 좋다 

 

만드는 법은 참 간단하다 

다른 김치 만드는 거랑 똑같다 

찹쌀 풀도 쑤고 멸치 다시도 우려 내고 액젓 넣고 갖은양념에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배추김치나 무처럼 따로 소금에 절일  필요가 없어서 어찌 보면 훨씬  간단하다 

원추리 김치를 담근 후 한국인 후배 윤짱에게도 주고 직장 후배이자 현재는 상사인 레이나에게도 주고 

동료인 동생 미치꼬랑 언니 미치꼬에게도 주고 부서 이동으로 새로 온 재일 교포인 조상에게도 주고..

당연히 원추리 김치란걸 먹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인데 

근데 다들 맛있다고...

일본에도 검색을 해 보니 원추리를 식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잎은 안 먹고 줄기 부분의 하얀 부분을 먹는다고 하는데 제일 연장자인 60대인  언니 미치꼬에게 

원추리가 먹을 수 있다는 거 알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60대라면 알지 않을 거 싶어서 

그런데 미치꼬상은 처음 들어 본다고 했고 다음날 

함께 사는 80대 후반의 시어머니에게 물으니 어릴 적 시골에서 먹어 본 적이 있는데

워낙 오래전이라 맛이 기억도 안 난다고 하셨단다 

 

원추리 김치를 다들 맛있다고 하니 

3번째 또 한 번 원추리를 뜯으러 갔다

워낙 많아서 20분만 뜯어도  한 보따리라서 뜯는 건 일도 아닌데 

데치고 물에 담가 두고 하는  손질이 조금 귀찮기는 하다 

그래서 34번째 뜯은 건 손질 않고 그냥 생원추리를 나눠 주고 

남은 건 또 한 번 원추리 김치를 만들었다 

어쩌다 보니 원추리 전도사가 되어 버렸다 

원추리를 식용한다는 걸 모르는 일본인들에게 원추리 김치 나눔을 했더니 밥 한 그릇 뚝딱이라고 ㅎㅎ

 

 

내가 일본이 아닌 한국에  살고 있었다면 원추리를 뜯으러 다니지도 않았을테고 

원추리 김치를 먹지도 않았을거다.

그런데 일본에 살다보니 이것 저것 하지 않았던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고 있다 

한국 살때 나물 캐러 가 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일본 사니 별걸 다 한다 

이것도 어찌 보면 하나의 향수병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말 마지막으로 한번 떠 원추리를 뜻으로 갈까 싶다 

근처에 벚꽃 나무가 꽤 많은 곳이 있는데 나들이 삼아 벚꽃 구경삼아 봄나물도 뜯고 

비가 안  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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