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 날이 너무나도 좋다
장마의 시작일까 내일부터는 몇일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비가 내리기 전날
날은 너무나 좋고 난 회사 쉬는 날이고
이런날을 그냥 집에서 방콕 할수는 없는 일
좋은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나도 바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오늘도 역시나 선약이 있었지만
그 선약을 미루고 나를 만나러 달려 와 주겠다고 한다
우리집 자기야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남자가 아닌 여자다
그것도 한국 언니야
아이 셋을 키우며 깐깐하신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언니가
전날의 갑작스런 나의 전화에 선약까지 미루며
울 동네로 달려 와 주었다
다른때 같으면 곧장 우리집으로 와서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멋진 레스토랑가서 런치를 하며 회포를 푸는데
오늘은 역에서 언니를 픽업한후 바로
달려 간 곳..
2주전 우리집 자기야랑 함께 갔었던 울 동네 공원이다
지난번 갔을때 꽃창포가 너무나 이쁘게 펴서 감동을 받았던 바로 그 공원 !
지난주 갔을때 꽃 창포가 아직 피지 않은 봉우리가 많았었다
오늘쯤 가면 만개한 꽃 창포랑 그리고 요즘 한창 제철인
이쁜 수국들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꽃 구경도 하고 자연속에서 힐링도 할겸 해서 ..
이 다리를 건너면 꽃 창포 군락이랑 수국 군락이 함께 있다
꽃 창포랑 수국의 조화라 ...
얼마나 이쁠까 정말 기대가 된다
다리 위에서 바라 본 연못 위에 떠 있는 작은 건물 .
용도가 뭘까?
여기서 숨은 그림 찿기
자라 아니 거북이인가 ?
자라인지 거북이 인지 한마리가 쉬고 있다
어디에 있을까?
찿은 분들에게 " 참 잘했어요 " 칭찬 한보따리 투척 !
다리를 건너 거북인지 자라인지 사진 한장 찍고
아! 역시나 이쁘다 수국
언니가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 아쉽게도 꽃 창포가 단 한송이도 없었다는 ...
사실 다리를 건너며 언니가 내가 한 말이 있다
미짱 꽃 창포라는거 그거 어린이 날에 장식 하는 그 꽃 아냐?
응 언니 그 꽃 맞아
그럼 아마 그 꽃 다 졌을텐데 ..
아니야 언니 지난번에 왔을때 아직 안 핀 봉우리들이 많았어
아마 지금쯤 만개 했을거야
그래? 우리집에도 꽃 창포 많거든
지난번 어린이 날에 시어머니가 몇 송이 꺽어 와서 현관에 장식을 했었거든
근데 우리집은 다 졌는데 ...
언니에게 이쁜 꽃 창포 군락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언니 말대로 다 지고 단 한송이도 없었다
지난번 찍은 사진들 ...
이것보다 더 만개한 모습을 상상했는데 ..
게다가 내가 잊은게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 언니네 집은 엄청난 땅 부자란걸...
집안에 마당에 도리이 鳥居가 있을 정도라 넓디 넓은 집인데
보통 신사에 있는 도리이 鳥居
그러나 아주 집이 큰 땅부자들은 마당에
이런 작은 도리이를 만들어 놓은 집들이 종종 있다
땅 값 비싼 동경에 도리이가 있는 집
게다가 마당에 밤나무 까지 있는 집
그런 넓디 넓은 집이니 꽃창포 있는게 어쩜 넘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
난 언니에게 꽃 창포를 보여 주고 싶을 뿐이었는데
언니는 매년 자기집 마당에서 꽃창포를 보고 있었다는 .. ㅠㅠㅠㅠ
여기 너무 좋다
수국도 이렇게 맘껏 보고 ..
우리집에 수국은 두 그루 밖에 없어서
수국이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는 줄 몰랐어
오늘 너무 좋다 ...
꽃창포 때문에 아쉬워 하는 나에게 언니는 넘 좋다며
내 팔짱을 살짜기 껴 주었다
나 얼마전에 우리집에서 또 뱀 봤잖아
이번에 꽤 컸어
신랑이 마당에서 꼼짝을 안 하고 서 있는거야
그래서 뭐 하냐 했더니 "뱀이야" 그러는데
진짜 뱀이 머리를 딱 들고 쳐다 보고 있는거 있지
나 진짜 미쳐 버릴것 같아
사실 작년인가 재 작년인가
언니네 막내딸이 자기 집 마당에서 실뱀에게
뒷굼치를 물렸었다
애가 "엄마 나 뱀에게 물렸어" 하는데 처음엔 농담하는 줄 았았는데
딸 아이 말을 듣고 뒷굼치를 보니 정말 뱀 이빨 자국이
나 있어서 바로 병원으로 달려 갔었다고 한다
다행히 독이 있는 뱀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동경에서
그것도 자기집 마당에서 뱀에게 물린다는게 말이 되냐고?
언니 난 세상에서 제일 싫은게 뱀이고
난 귀신도 안 무섭거든 근데 무서운게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뱀이야
내가 마당 넓은집이 진짜 부러운데
내가 마당 넓은 시골로 이사 못 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뱀 때문이야
나 이제 언니 집 안 갈 꺼니까
이젠 무조건 언니가 우리집으로 와
아니야 평소에 막 나오고 그러지 않아
1년에 한번 볼까 말까야
보는게 문제가 아니라 마당 어딘가에 그 놈이 숨어 있다는거 아냐
난 절대로 언니 집에선 못 살어
작년에 언니네 딸이 집 마당에서 뱀에게 물렸다고 했을때
언니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근데 그게 농담이 아닌 사실이었다는
내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 !
도대체 집이 얼마나 넓으면 마당에 뱀이 나오냐고?
혹 동경 어디 변두리겠지 .
NO, NO 언니네는
신주쿠 까지 전철 타고 43분이나 걸리는 동경 변두리인 우리집과 달리
신주쿠까지 전철 타면 20분이면 가는 아주 땅 값 비싼 곳이다
그런 도심 가정집 마당에서 뱀이 ..
헐 ...
이야기가 삼천포로 갔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려서
비록 내가 기대했던 꽃창포는 볼 수 없었지만
시원한 연못과 살랑 살랑 기분 좋게 부는 바람
그리고 수많은 종류의 수국을 보면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수국을 보며 걷다보니 아주 오래된 옛날 집 발견
안내문을 보니 에도시대에 지어진 그 당시 병원이었던 집인데
주요 문화제라고 한다
언니가 이 집 안을 들여다 보며 뭔가 아주 아련한 냄새가 난다고 ..
이게 무슨 냄새지?
아! 이거 아궁이 냄새야
어릴적 외할머니 집에 가면 나던 그 냄새야
약초 냄새 아냐? 쑥 말린 냄새 같은거?
아니야 미짱 이 냄새 모르는 구나. 이거 아궁이 불 피우는 냄새
그으름 같은 그 냄새야
그런데 언니의 말이 맞았다
부엌이었던 자리에 가 봤더니 아궁이가 있었고
안내판에 습기제거등
보존을 위해 2주에 한번 지금도 불을 지피고 있다고 한다
봐 내 말이 맞았지
이 냄새 넘 오래간만이고 넘 반갑다
울 외할머니 집 냄새가 이랬었어
아주 오래전 일인데
내 코가 그 냄새를 기억 하고 있다는게 너무 신기 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 ..
언니가 너무 좋아하니 나도 덩달아 너무 좋다
꽃창포는 다 져서 한송이도 볼 수 없었지만
이쁜 수국을 원 없이 보았고
연꽃이 곧 꽃을 피울듯 했다
나 연꽃이 이렇게 많은 것을 실제로 본 적이 없어
이거 다 피면 너무 이쁠것 같아
그럼 언니 연꽃 필때쯤 다시 올까?
좋지 .. 근데 연꽃 언제쯤 펴 ?
몰라 언제쯤 피는지 검색 해 보지 뭐
곧 필것 같은데 그치 ?
내가 참 좋아하는 언니랑
공원에서 자연과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좋고 행복 했다
내가 이 언니를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이유
이 언니는 내가 일본에서 만난 언니가 아니다
한국에서 그것도 나의 가장 빛나던 20대 초반 청춘을 함께 보낸 선배다
26년전 같은 숙소에서 한 지붕 아래에서 한 솥밥 먹고 살았던
그런 인연이 깊은 선배다
그런데 뭔 인연이 그리 질긴지 같이 물 건너와
일본 그것도 같은 동경 아래에서 살고 있다
일본에 와서 더 친해졌지만 ..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단 나랑 달리 너무 너무 착하다
어쩜 저렇게 까지 착할수 있을까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그래서 좋다
나랑 달라서 ..
어찌 보면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너무 착하고 순진해서 ..
각자의 삶이 바빠 같은 동경 하늘 아래 살면서도
자주 만날수 없지만
나의 20대 초반 그 시절 그 모습을 아는 언니랑
이렇게라도 가끔 만나 보내는 시간이 나에겐 너무나도 좋고
소중한 시간이다
그래서 오늘 난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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