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결혼 19년차 일한부부인 울부부는
한국에서 만나고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고
한국에서 바로 신혼 살림을 시작하는 바람에
일본에서 따로 결혼식을 하지 않았었다
덕분에 대부분의 시댁 친지들을 만나지 못한 채
한국에서 신혼 살림을 꾸리고 살다가 반년만에 일본으로 들어 왔었다
결혼 반년만에 일본에 온 우리 부부
시부모님은 우리를 데리고 대부분의 친척들이 사시는 큐슈의 쿠마모또.
구마모또에서 또 하나의 섬 아마쿠사로 가서
레스토랑을 빌려서 친지들을 모시고
뒤늦은 며느리 소개를 하는 자리를 만드셨다
그렇게 결혼 반년만에 처음으로 자기야 외가 친지들을 만났었다
아마쿠사는 자기야의 외갓집 친척들이 사신다
시골이라 친지도 많고 정신없이 인사 드렸었다
친척 관계가 희미해져 가는 현대사회
특히나 일본이지만 도시와 달리 시골은 친척 관계가
한국 이상으로 돈독라고 끈끈하다
물론 한국과는 조금 다른 정서이기는 하지만 ...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누가 누군지도 모른채
일단 무조건 인사 드리기
그 당시 80이 넘으신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와 단 두분이서 사셨다.
가까이 큰 아들가족이 있지만 짐이 되고 싶지 않다시며
아직은 두분이 사실만 하시다며 두 분만의 생활을 하고 계셨다
그때 외할머니는 중증의 치매를 앓고 계셨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 된것이 그 때는 자식들도 못 알아 보고
오직 남편만 알아 보셨다
그것이 시어머님은 섭섭하신지
어찌 자식은 잊어 버리고 신랑만 안 잊어 버리냐고..
"엄마 나 엄마 큰 딸이야.
그리고 여기 엄마의 맏손주 류지.
여기는 류지와 결혼한 미짱
엄마의 손주 며느리야...
아무리 말씀드려도 멀뚱 멀뚱 쳐다 보시시만 하시는 외할머님
그런 외할머니를 외할아버지는 알뜰히도 챙기셨다
난 그때까지 사실 치매 앓으시는 분을 직접 뵌 적이 없었다
친정집에는 치매 환자는 없었기에...
그래서 어찌 할머니를 대해야 할지 몰라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했었다
저녁이 되어 시어머님이랑 이모님이 저녁 준비를 하셔서
나도 부엌으로 가 돕겠다고 서성이고 있는데
외할머님이 부엌으로 오셔서 아무 말씀 없이
내 손을 가만히 잡으셨다
할머님 왜 그러셔요?
뭐 필요하세요?
할머님은 아무 말씀없이 내 손에 뭔가를 쥐어 주시고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 보신다
손을 펴 보니 꼬깃 꼬깃 접쳐진 만엔짜리 지폐 한장이.
할머니 이런건 안 주셔도 괜찮아요..
시어머니가 다가오셔서 무슨일이냐 물으시길래
사정을 설명 드렸더니
눈시울을 적시시며 치매로 딸도 못 알아 보면서
첫손주 며느리는 본능적으로 아시나 보다고
할머님 마음을 그리 표현하시는 것이니
그냥 감사히 받아 두라고 하셨다.
만엔짜리 한장을 건네시는 시외할머니의 모습이
나를 무지하게도 사랑하셨던 울 할머니와 겹치며
눈시울이 뜨거웠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은것 같다
표현의 방법이 조금 다를뿐...
시외할머님의 자기야 사랑은 지극했다고 하신다
외손자이긴 하지만 첫 손자라서..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한국 할머니가 생각난다.
나를 참 이뻐 하셨는데..
일본 할머니나 한국 할머니나 손주 사랑은 다 똑같은것 같다
시외할머님이 좀 더 건강 하실때 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외할머님이 나를 많이 이뻐해 주셨겠지 ..
그 후 할머님은 증상이 더 심해 지셔서 요양 병원에 입원하셨다
결국 첫 증손주인 히로를 한번도 안아 보시지 못한채
줄곧 요양병원에 누워만 계시길 10년 훌쩍
입원해 계시는 동안 몇번인가 요양병원에 면회를 갔었지만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신채 가만히 누워만 계시던
외할머니 모습이 내 기억속 시외할머니의 모습의 전부이다
치매에 노환까지 와서 누워서 지내시다
94세로 돌아가셨다.
이맘때가 시외할머님 기일인었던곳 같다
일본은 한국처럼 매년 제사란걸 지냐자 않는다
시외 할머니가 돌아가신후 첫 기일엔
친척들이 다 모여 첫 기일을 지냈지만
그 다음해 부터는 따로 기일에 제사란걸 지내지 않는다
가까이 사는 자식들이 성묘 가는 정도인것 같다
난 매년 제사를 지내는 어쩔수 없는 한국 사람인지라
제대로 된 대화 한번 하지 못한 시외할머님이시지만
이 맘때가 되면 외할머님 이때쯤 제사인데 싶다
시외할머님과의 추억은 단 하나 만원짜리 지폐뿐이지만
그 기억이 나에겐 아주 강하게 기억이 남아 있다
아무 말씀없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시며
내 손을 꼭 잡으시던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
지금도 가끔 만엔짜리 지폐를 보면 할머님이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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