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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집에서 먹기

곰탕도 끓일줄 아는 여자

by 동경 미짱 2021.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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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오쿠보 한인타운의 한국 마트에 갔다가 냉동 코너에서 시간을 꽤 많이 보냈다
나란 여자 한국에 살때는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느라 제대로 밥 한번 해 보지 못하고 일본에 왔다
일본에 와 보니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한국 음식들이 얼마나 그립던지 …
지금이야 한류다 뭐다 한국 음식 한국 식재료가 흔하디
흔하지만 20년전 그때만 해도 한인 타운이 가지 않으면 한국 음식이나 식자재는 구경하기도 어려웠고 또한 꽤 비싸서 자주 사 먹지도 못 하던 시절…
내가 왜 요리를 안 배우고 일본에 왔을까
한국 여자가 김치도 못 담그고 ㅠㅠㅠ
일본 오기전에 진작에 요리를 좀 배워서 올껄 하면서 후회했던 시절도 있었다
일본에 20년을 넘게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주부 다워져 가긴 했지만 해 먹던 거나 해 먹을 줄 알지 아직 해 보지 못한 요리들이 엄청 많다
그중에 하나가 곰탕이다
소 뼈를 푹 고우면 곰탕이 된다고만 알고 있을 뿐 아직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곰탕이다
사실 난 곰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싫어한다
지금은 1년 가 봐야 병원 한번 안 가는데 매달 꼬박꼬박 비싼 보험료 내는 게 가끔 아깝고  억울하다 생각될 정도로 엄청 무지 건강하지만  고교시절 건강이 좋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평소에도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건강을 위해 체력 보강을 위해 강제로 매일 매일 곰탕이다 뭐다 몸이 좋다는 건 다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싫어하던 곰탕을 강제적으로 먹다보니 지금도 곰탕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싫다며 거부하는 막내  딸을 어르며 타이르며 먹이셨던
엄마 아빠 덕분에 지금은 거짓말처럼 잔병치레 하나 없이 무지무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30년 전 싫었던 그 기억 때문에
남들은 구수하다는 곰탕 냄새가 나는 노랑내로  느껴지고 역겨웠다
그 후로 30년을 곰탕 설렁탕 육개장  심지어는 불고기도 먹지 않는다
숯불에 구워 육즙을 뺀 바베큐는 오케이 지만 고기 육즙은 무조건 거부하는 여자다
그랬던 내가 한인 마트 냉동코너에서 소 뼈를 발견했다
평소 같으면 쳐다도 안 보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들었다 놓았다를 수없이 반복한후 굳은 결심을 하고
소뼈를 사 들고 왔다





소 뼈 두 봉지
내가 이걸로 곰탕을 만든다는 거지 ….
인터넷 거색을 해 보니 물이 담궈 핏물을 빼고 한번 삶아 준후 잘 씻어서 불 위에 올려놓으면 끝!
남은 건 무조건적인 기다림이라고 한다

30년 넘게 곰탕을 쳐다도 안 보던 내가 갑자기 곰탕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누라가 곰탕을 안 먹어서 지금껏 인스턴트만 먹어 봤지 제대로 된 곰탕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우리 집 두 남자에게 먹이고 싶어서다

검색한 레시피에 써 있은 대로 1차로 6 시간을 끓이고 차로 물을 넣고 6시간 끓이고 또다시 3차로 6 시간 끓이고 …
진짜 기다림이었다
잠 잘깨도 약불이 올려 두고  잤다
기름이 뜨면 건져내며  끓이고 또 끓이며 기다림 …

처음엔 부엌에서 끓이다가 나중엔 마당에서 부탄가스로 끓이고 또 끓이다 보니 빈 부탄가스가 5 개 ㅎㅎㅎ 진짜 내가 한건 오직 기다림이었던 것 같다

워낙 오래전이어서인지 그때 그렇게 역겹게 느껴졌던 노랑내도 나지 않았다
세월 탓인지 아님 내 나이 탓인지 …

뼈를 오랜 시간 끓이면 이렇게 하얀 국물이 된다는 게 신기하다

당면도 넣고 소고기도 따로 삶아 뒀다가 넣고  끓였다
자기야도 히로도 예전에 먹어 본 곰탕 맛이 난다며 맛있다고 했다
두 사람이 맛 있게 먹으니 곰탕을 끓이길 정말  잘했다 싶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고기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끓인 곰탕을 먹지 않았다
고교 시절 내가 몸이 안 좋았던 시절
그때 너무나 싫어했던 곰탕인지라 아무리 우리딥 자기야 랑 히로가 맛있다고 하지만 먹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곰탕이 꽤 양이 많았다
우리집 두 남자는 같은 메뉴를 몇 끼씩 먹는 사람들이 아닌지라 두어 번 먹을 양을 남고 두고 나머지는 냉동시켜 두었다
반찬이 없을때 비상식량으로 좋을 듯하다
주부 경력 30년만에 처음으로 끓여본 곰탕은
대 성공 !

주부 경력 20년 넘는 아줌마가 곰탕 끓였다고 자랑질이라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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