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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에 ../일상

타향에서 맞이하는 23번째 결혼 기념일

by 동경 미짱 2021.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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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참 빠르다
한 사람의 동반자를 만난 지 벌써 23년이 흘렀다
23년이란 시간이 참 긴것도 같은데 막상 돌아보니 너무나 짧게 느껴진다
아! 내가 이 남자랑 23년을 살았구나 ….
글쎄다
23년간의 동반자와의 성적표를 훑어보니 딱히 불만도 그렇다고 딱히 자랑할 것도 없이 너무나 평범하다
근데 뭐 평범이란게 제일 좋은 게 아닐까 싶으면서도 너무 평범하다 보니 특별한 이야깃거리도 없다
인생이란 게 산 넘고 강 건너며 간다는 데 감사하게도 아직은 산도 넘을 일도 없었고 강을 건널 일도 없었던 평범함이 얼마나 축복인지 새삼 느낀다
23년 전 처음 둘이서 시작한 인생길에 스무 살을 눈앞에 두고 있는 아들 녀석이 하나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하나뿐인 아들녀석은 때론 미웠다 때론 이뻤다
정말 말 그대로 나 와는 애증의 관계다
사내 녀석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애초에 취향이 달라서 그런 건지 나 와는 자주 토닥토닥 거이지만 다행히도 아빠랑은 비밀도 없이 조잘조잘 잘도 떠드는 아이다
부부인 나 보다도 아빠와 아들의 궁합이 더 좋은것 같아 가끔 나만 왕따?라고 느낄 때가 있다 ㅠㅠㅠ

23번째 결혼 기념일
우리 집 두 남자와 함께 외식을 했다
소고기 돼지고기보다 닭고기를 훨씬 더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맞춰서 자기야가 예약해 둔 곳은 토종닭 전문점

꽤 넓은 실내는 100% 개인룸으로 되어 있는 가게라 지금같은 코로나 시대에 안심하고 외식이란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집 자기야가 미리 코스를 주문을 해 두어서 따로 주문을 할 필요가 없어서

건배로 시작!
아직은 히로도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함께 하지만 언제까지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함께 해 줄지는지 …
몇 년 후면 미지의 며느리에게 내 자리를 넘겨줘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역시 아들보다는 오랫동안 내 옆에 있어 줄 남편이랑 더 사이좋게 지내야지 싶다

결혼 23년째이니 내가 일본에 와서 산지도 22년이 되어 가고 있나 보다
강산이 두번이나 바뀌었을 시간이다
예전엔 정말 상상도 못 했었다
내가 내 나라를 떠나 이렇게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할지 …
난 죽어도 내 나라를 떠나서 살 수 없을 줄 알았는데 한 해 두 해 살아보니 또 살아지는 게 인생이더라

비록 타향이었지만 자기야와 히로라는 가족이 있었기에 타향이 타향이라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음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
내가 한국을 떠나 살면서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부모님뿐이다
그리 싹싹한 딸이 못 되기에 이런 마음 제대로 표현도 못 했다
가까이 살면서 볼 것 안 보일것 다 보여가며 속 썩이는 것보다 멀리 살아도 잘 살면서 엄마 아빠 걱정 안 시키는 걸로 그게 효도라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생일이나 결혼 기념 같은 기념일이면 엄마 아빠 생각이 더 나는것 같다
엄마 아빠 곁엔 오빠도 있고 언니도 있으니까 괜찮겠지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
결혼 기념인데 왜 부모님 생각이나냐하면 울 아빠가 탐탁지 않아했던 결혼이었기에 그런 것 같다
지금이야 속 썩이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 이쁘다 하시지만 ..
지금도 가끔 "아빠가 전서방 반대했잖아 " 라고 하면 " 내가 언제 ....." 라며 얼부무신다 ㅎㅎ

비록 엄마 아빠랑 같이 하지는 못 하지만 내 가족들과 함께 기념일도 챙겨가며 때론 맛 난 음식도 먹으며
잘 살고 있다고 전해 드리고 싶다


내 곁에 자기야 랑 히로가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고 또 한 잔의 술이 있어서인지 오늘따라 기분이 참 좋다

토종닭 전문점인데 이 집은 말고기도 유명하다고 한다
생선으로 보니지만 말고기로 만든 말 초밥이다
난 생고기에 거부감이 있어서 먹지 않았더니 히로가 정말 맛있다며 제발 한 입만 먹어 보라며 몇 번을 권유해서 먹어 보았더니 진짜다
아무 냄새도 없고 아주 부드러운 게 말 그대로 사르르 녹는 것 같다
이래서 사람들이 말스시 말스시 하는구나 …
한 마디로 내 편견을 무너뜨린 일품이었다

한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되고 …
기분이 좋다 보니 술술 잘도 넘어간다
나만 기분이 좋은 건가? ㅎㅎㅎ

결혼 23년 차라 …
ㅎㅎㅎ
나라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뭣 하나 닮은 구석이 없는 것 같았던 이 남자랑 오래도 함께 있었다 싶다
서로의 다름이 오히려 조화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디저트인 맛챠 아이스크림 위에 튀겨져서 양념된 우엉이 올려져 있는 게 신기했다
짭조름한 우엉 튀김이랑 달달한 아이스의 조화가 의외로 잘 맞았다

자기야 :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나 : …. 응 그게 없어 …
자기야 : 그럼 여행이라도 갈까? 12월은 자기가 바쁘니까 1월에 가면 되겠네


결국 오늘도 무얼 갖고 싶은지 묻는 자기야의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난 딱히 갖고 싶은 게 없는데..
꼭 물건이어야 하나
그냥 오늘처럼 가족이 모여 맛난 음식을 먹는 걸로 난 만족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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