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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에 ../일상

20년만에 먹은 호박잎찜

by 동경 미짱 202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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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한국인 후배가 뜬금없이 " 언니 호박잎 따러 가요"라고 한다
일본에서 갑자기 웬 호박잎??
일본인들은  호박잎을 먹지 않는다
당연히 일본에서 호박잎을 먹을일이 없다
왜냐? 구할수가 없으니까....
호박잎 찜이라...
한국에서 살 때 울 할머니가 가끔  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때는 나는 어렸으나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 산지 어느새 20년이 넘어간다
그 20년 동안 매년 한국을 가고 있지만 경조사나 특별한 일로 가는 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아이가 있다 보니 매년 3월의 봄 방학 때 한국을 갔었다
3월엔 호박잎을 구하려야 구할 수도 없는 시기이기도 하고
한국에 가면 만날 사람도 많고 해서 거의 밖에서 외식을 하다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호박찜 같은 건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호박잎 찜을 먹은 게 언제인지 생각해 보니
20년은 훌쩍 넘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 살면서 단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회사 한국인 후배가 호박잎을 따러 가잔다
회사에 동료 중 가스라는 케냐인이 있는데 그가 텃밭을 하고 있는데
(일본에서 시에서 작은 구획의 텃밭을 얼마간의 사용료를 내고 텃밭을 할 수가 있는 제도가 있다
개인이 운영하는 주말 농장과는 달리 시에서 운영하니 그 시 안에 있어서 그리 멀지도 않고
또 시에서 운영하니 엄청 싼 가격에 텃밭을 할수가 있다 )

한국인 후배가 가스상에게 한국에서 가져간 호박씨를 주며 심어 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스가상이 호박씨를 심었고 지금 아주 아주 잘 자라고 있다고
같이 가서 호박잎을 따자고 하는데 가스상의 텃밭엔 나도 몇 번인가 가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근무를 마치고 그녀와 함께 가스상의 텃밭에 갔다

우와 호박잎 천지다
근데 너무 커서 질기지 않을까 싶었지만 부드러운 잎을 골라서 땄다

호박잎 밖에 안 보인다
호박은 열리기나 했는지...
보기엔 잎 밖에 안 보였는데 호박잎을 따러 가까이 가 보니

어머나 세상에 호박도 많이 많이 열렸다
꽃이 막 피기 시작한 것도 엄청 많다

한국인 후배가 가스상에게 호박이 크면 따지 말고 누렇게 될 때까지 익혀라고 했단다
누렇게 변하기 시작 한 커다란 호박도 몇 개나 있었다

천지가 호박잎이었지만 우리 집 자기야도 호박찜은 먹어 본 적이 없으니 좋아할지 어쩔지도 모르겠고 

히로는 초록색(채소..)은 무조건 싫어하니 절대로 안 먹을 테고 

그래서  나 혼자 한 두세 끼  정도 먹을양으로 적당히 뜯어왔다 

 

호박찜 싸 먹을 된장 양념에 호박도 넣으면 맛있을 것 같아서

야들 야들한 호박도 하나 따 왔다 

집에 오자마자 방금 딴 호박을 넣고 자박하니 된장을 지졌다

호박찜 색깔이 선명하니 되게 이쁘다

우리 집 마당에서 딴 고추도 씻어서 호박찜 한 접시 준비 끝!

 국물 적게 잡아 걸쭉하게 지진 강된장 비슷하게 흉내 낸 된장

호박잎에 이 된장을 한 숟가락 올리고..

생각만 해도 군침이 막 돈다 

솔직히 20년 전에 마지막으로 먹었던 호박잎 쌈 맛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나에건 추억의 음식이고 그걸 한국 떠나 산 20년 동안 한 번도 먹질 못 했고 

20년 만에 내가 직접 따 온 호박잎을 먹는다는 그 기분에 도취해서 

기대를 잔뜩 하고 한 입!

호박잎 쌈이 이런 맛이었구나...

내가 이런 걸 먹는구나 하는 감동에 호박잎이 엄청 무지 맛있게 느껴졌다

 

20년 만에 일본에서 호박잎을 먹었다는 감동에 

바로 한국인 후배에게 카톡을 날렸다

또 따러 가고 싶어서..

또 따러 가자고....

호박잎이 뭐라고 

일본에서 죄다 갖다 버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인데 그런 호박잎에 이런 감동을  받을 수 있다니 

 

예전에 비해 요즘 난 옛 생각이 참 많이 난다 

사실 20년 전 그땐 호박잎이나 고구마 줄기 볶음 이런 것 보다

햄이 더 좋고 햄버거 떡볶이 매운 오뎅 이런 걸 더 좋아했었는데 

이젠 호박잎이 그립고 호박죽이 그립고 호박전이 그리운 걸 보니 

예전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까지  먹고 싶어지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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