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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우리집 두 남자의 요리

아들이 차려준 생일상 받고 부끄러운 엄마

by 동경 미짱 2021.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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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아직 이십 대 청춘인데 벌써 반백년을 살았단다
50이란 숫자가 왜 이리 무겁게 느껴지는지 …
그나마 한국에 살고 있지 않아서 한국 나이가 아닌 만 나이인 게 조금의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히로는 유치원때 엄마가 스무여덟 살인 줄 알았었다
매년 생일이 되면 “ 엄마는 몇 살이야?” 라고 물었고 매년 난 스물여덟이라 했었다
히로가 어릴땐 매년 스물여덞이라 속일 수 있었지만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숫자에 대해 알게 되니 작년에도 스물여덟이었는데 왜 올해도 스물여덟이냐며 엄마 나이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엄마가 숨기면 숨길수록 히로는 엄마 나이를 알고 싶어 했고 히로가 알고 싶어 하면 할수록 난 알려주지 않았다. 엄마 나이를 알아내려고 애를 쓰는 히로가 귀엽고 또 그런 히로를 놀리는 게 재미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히로가 엄마 나이를 물으면 “엄마 마음은 스물여덟이야” 라며 알려 주지 않았었다
나이를 숨기는 엄마 때문에 히로가 엄마 나이를 알게 된건 중 3이 되어서였다
그때까진 나이를 알려는자와 숨기는 자의 치열한
머리싸움으로 재미있었는데 이젠 뭐 저 더 숨길 게 없어서 재미가 덜 하다

내 생일상을 히로가 차려 주었다
마트에 갔이 장을 보러 가자고 했지만 히로는 싫다며 혼자 장을 보고 장 보는데 든 경비도 히로가 부담했다

평소엔 앞치마을 하지 않고 요리를 하는 히로가
오늘은 앞 치마라지 두르길래 앞치마 두른 모습은 처음이라 사진으로 그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내가 사진을 찍으니 히로가 싫어 하면서 빨리 부엌에서 나가라고 나를 밀어낸다
왜 그러냐고 사진 좀 찍자고 하니 요리 하는 모습을 보면 메뉴를 엄마가 알게 되니까 싫단다
상을 차릴때까지 메뉴 공개를 하고 싶지 않아서 마트에 장도 혼자 보러 간 거라며 나에게 부엌에서 나가 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난 그렇게 부엌에서 쫓겨났다
내가 히로가 요리하는 사진을 건진 건 앞치마 두른 모습으로 커다란 소고기 덩어리를 굽는 게 전부다

뭘 만드는지 평소보다 요리하는 시간이 꽤 길었다
기다리다 지쳤다
배도 고프다
생일날 이렇게 쫄쫄 굶어야 하다니 ㅠㅠㅠㅠ
메뉴가 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기다림 …

드디어 차려졌다
울 아들이 차려준 50살 내 생일상

내가 유일하게 히로가 요리하는 사진을 찍은 커다란 소고기 덩어리가 이렇게 맛 스런 로스트비프가 되어 나왔다
히로가 로스트비프를 만드는 건 처음이다
처음인데 처음 같지 않은 이 능숙함과 맛에 감탄할 뿐이다

로스트비프를 찍어 먹을 소스도 히로가 직접 만들었다
오른쪽은 다진 양파와 마늘을 볶아 발사믹을 넣어서 만든 소스고 왼쪽은 간장에 고추냉이를 넣고 만들었다고 한다

도미 가르파쵸
접시 선택도 데코레이션도 심플하면서도 색감도 맞춰가며 꽤 센스가 있는 것 같다
도미 위에 미니 토마토를 미니 토마토 위에는 브로콜리 새싹이다
색과 영양 발란스 까지 맞춘 레시피다
난 이런 걸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

진한 수프가 일품인 포토푀
감자랑 당근 양파 그리고 양배추를 넣고 우려낸 포토푀가 정말 맛있었다

엄마 생일상의 메인인 스파게티
아보카도 카리포나라 라고 한다
엄마가 아보카도를 좋아하는 걸 아니까 오늘은 엄마가 주인공이니까 엄마 취향에 맞게 아보카도를 넣어서 만들었다고..
그냥 먹어도 맛있었는데 후추를 살짝 쳐서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스파게티를 좋아하고 스파게티 맛에는 까탈스러운 우리 집 자기야도 일반적인 스파게티 가게보다 훨씬 맛있다고 평가를 했다
매일 이렇게 차려주면 레스토랑 갈 일이 없을 것 같다

엄마 생일날 만 19살 우리 아들 녀석이 엄마 생일상으로 차려낸 멋진 상
미역국이 없어도 너무 만족스러운 아니 고마운 생일상이었다

히로가 엄마 생일상을 차린다며 나를 부엌에서 내 쫒았을 때 난 생일상을 기다리며 엄마랑 전화를 했었다
아직 저녁도 못 먹고 있다고 히로가 차려 주길 기다리고 있자고 하니
울 엄마 왈  :니는 좋겠다 아들 잘 둬서 생일상도 받아먹고
나 : 엄마도 아들이 차려 주잖아

히로가 생일상을 차리는 동안
한참을 엄마랑 통화를 했다




접시 선택도 전부 흰색으로 깔끔하니 잘 한것 같다
역시 히로는 요리에 소질이 있는것 같다
내일 출근이지만 이런 요리를 앞에 두고 와인 한잔 안 할수가 없다

사실 히로에게 생일상 받기가 부끄럽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작 난 엄마 생일상을 직접 차려 드린 적이 없다
학생 때는 오빠랑 언니가 있으니까 나 몰라라 했었고
성인이 되어선 집을 떠나 나 홀로 사울 생활하느라 나 몰라라 했고
그리고는 일본으로 와서 살다 보니 엄마 생일날 돈이나 부쳤지 직접 내 손으로 따뜩란 생일상을 차려 드린 기억이 없다
어쩌다 엄마 아빠 생일에 맞춰 한국에 나가도
언니랑 오빠랑 같이 엄마 아빠 모시고 나가 외식을 했지 내 손으로 생일상을 직접 차려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뭐 이런 딸이 다 있는지 ㅠㅠㅠ
좀전에 통화할때 히로가 생일상 차려준다고 자랑하지 말껄 ….

오늘 히로가 차려준 생일상을 받고 보니 엄마에게 미안하고 히로에게 고맙고 ….

글쎄 … 내년에도 히로가 내 생일상을 차려 줄지 모르겠지만 오늘 받은 생일상이 아들 녀석 차려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상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이 생일상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 아들이 고맙다 … 네가 엄마보다 열 배는 더 낫다 “

나 : 근데 히로야 29일 엄마 아빠 결혼 기념일인거 알지?
히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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