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차린 저녁

나는 케이크를 만드는 직업을 가진 여자인지라
지난주부터 아주 아주 바쁘다
다음 주부터 2주간이  크리스마스 본방이지만
지금도 엄청무지 바쁘다
나에겐 1년중 제일 바쁜 시기이다
나의 주 특기인 가족들에게의 비상사태 선언을 지난주에 했다
나의 주 특기라 …
가족들에게의 비상사태 선언이라 …
도대체 뭔 말이래???

나는 나에게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가족들에게 비상사태를 한다
남편과 아들 이 두 남자와 살고 있기에 남녀의 뇌 구조의 차이로 서로 간 이해 불가 사태가 종종 생기기도 한다.
서로가 이해 불가 상태가 되면 별것 아닌 사소한 것에 감정싸움과 말다툼이 되기 쉬우니까 난 미리 그런 싹을 싹둑 잘아버린다
예를 들어 생리주기가 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질 때
미리 우리 집 두 남자에게 “ 나 생리중이야 “ 이 한마디를 던진다
즉 우리집 비상사태 선언 기간이 된다
물론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갈 때도 있지만 가끔 별것도 아닌 일에 짜증을 내거나 잔소리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미리 비상사태 선언을 해 둔 상태라 우리 집 두 남자는 어느 정도까지는 나의 짜증을 받아 준다
내가 미리 비상사태를 선언하지 않았다면
그냥 말해도 될걸 왜 짜증을 내냐? 이게 성질 낼 문제냐?  왜 저녁밥을 아직 안 했냐 등등
쓸데없이 내 감정을 건들지 않으니 서로가 평화롭고 좋게 넘어갈 수가 있었다

내가 갱년기에 접어들었을 때도 비상사태를 선언했었다
“ 여자로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 갱년기인 것 같아 “
이 한마디에 우리 집 두 남자는 갱년기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고 여자의 갱년기 증상에 대해 공부를 해가며 나를 이해해 주고 서포트를 해 주었다
그 덕분에  우리 집 두 남자의 이해와 협조 덕분에 별 분란없이 평화로운 갱년기를 보내고 있다
우리집 두 남자에게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주 또다시 나는 비상상태 선언을 했다
“ 나 이번 주부터는  엄청 바쁠 거니까 집에 오면 피곤해서 쓰러져 자는 날이 많을 거야. 밥 기다리지 말고 알아서들 챙겨 먹고 나한테 아무 기대하지 마 “
물론 바쁘고 피곤하다고 집안일에 손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니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겠지만 밥반찬이 조금 부실해도
이렇게 선언을 해 두고 우리 집 두 남자도 내가  차려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세탁기를 돌리거나 빨래를 개어 주시도 하고 다른 때 보다 더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돕는다
가끔 “피곤하지?” 하면서 다리 마사지라도 해 주니 이래 저리 비상사태 선언은 우리 집에선 아주 편리한 시스템이다

월요일인 오늘 나는 출근이었고 히로도 오후에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우리 집 자기야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다
오늘은 집에서 재택근무를 한 우리집 자기야가 저녁을 차렸다

퇴근 후 피곤해서 잠시 잠이 들었었는데 깨어나 보니 우리 집 자기야가 저녁을 만들어 두었더라는..

자기야가 만든 어묵
어묵에 무와 배추도 넣고 소시지까지 넣고 끓였다
뭐가 들어가면 어떠리 내가 안 만들었다는 게 중요하지
나는 세상에서 내가 만들지 않은 남이 만들어 주는
밥이 최고로 맛있더라 . 그것도 피곤하고 지친날 남이 만들어 주는 밥은 뭐든 다 맛 있더라 …ㅎㅎ
결론은 오늘 저녁은 최고로 맛있었다

밥 대신 떡을 구웠다
찹쌀로 만들어 쫄깃쫄깃한 일본 떡을 토스트에 구웠다

냄비채 식탁에 턱 하니 올렸다
어묵은 뭐니 뭐니 해도 냄비채로 먹어야 제 맛이니까

어묵에 김치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남이 차려준 밥 상에 군 말하기 없기!

일 하고 퇴근해서 피곤한 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남편이 만든 어묵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지난주 발령한 나의 비상사태 선언은 12월 26일까지다
이번 비상상태 기간도 이해심 많은 우리 집 두 남자 덕분에 무사히 잘 지나갈 것 같다
크리스마스라 ….
남들은 다들 들떠서 손꼽아 기다리는 크리스마스가 나에겐 전쟁 같은 날이다
빨리 후딱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 ㅠㅠ

오늘은 우리집 자기야가 저녁도 차리고 식사를 마친후 전신 맛사지까지 서비스로 받았다
비상사태 선언의 효과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