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를 사 왔다
일본에서는 좀 큰 멸치는 대개 육수용으로 팔리고 있다
나도 일본에 와서 살면서 한 번도 큰 멸치로 멸치 볶음 같은 요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육수용이라 쓰여 있으니 육수만 내는 건 줄 알았고 그래서 육수만 냈었다
그러다 가만 생각 해보니 육수용이라 쓰여 있다고 볶음을 하면 안 된다는 법 있나?라는 아주 기초적인 궁금증이 ….
일본이 큰 멸치를 먹는 습관이 없어서 그렇지 못 먹는건 아니잖아 하는 …
커다란 멸치를 보면 매콤한 고추장 볶음이 생각나는데 단 한 번도 커다란 멸치로 고추장 볶음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 나는야 무늬만 주부인 불량 주부 ㅠㅠㅠ)
주부 경력 23차에 처음으로 큰 멸치로 고추장 볶음을 만들어 볼까 한다
육수용이라 쓰여진 커다란 멸치를 사 왔다
그리고 멸치 똥 따기
멸치 똥에 꽤 영양가가 많아서 통째로 먹는 게 좋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은 적이 있지만 멸치 똥의 씁쓸한 맛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입에 쓴 약이 몸에도 좋다고 하지만 입에 쓴건 역시 싫다
고로 난 멸치 똥을 먹지 않고 빼 내기로 했다
일본에 와서 산지 22년만에 주부 경력 23년 만에 처음으로 멸치 똥 따기에 도전을 했다
멸치 똥 따는데 뭔 도전씩이나 ㅋㅋㅋ
꽤 많은 양니라 이걸 언제 다 따나 싶었는데 저녁 먹고 앉아 따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북이 쌓이기 시작하는 멸치 똥
쌓이는 멸치 똥 보다 더 많이 쌓이는 똥을 뺀 손질된 멸치
멸치 똥을 따면서 머리는 따로 모아 두었다
그렇게 몸통 따로 머리 따로 똥 따로
꽤 시간이 걸렸지만 똥 따로 몸통 따로 머리 따로 수북이 쌓이는 걸 보니 묘한 달성 감 같은걸 느꼈다
멸치가 뭐라고 달성감씩이나 …
그렇게 먹고 싶었던 고추장 볶음
건강을 위해 아몬드도 한줌 넣고 같이 볶았다
매일 아몬드 몇 알씩 먹어야지 하면서도 챙겨 먹는걸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요리에 아몬드를 넣어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멸치 볶음도 그렇지만 샐러드 같은걸 만들때도 얇게 저민 아몬드나 호두를 넣기도 하고 어떨 땐 우엉조림 같은 걸 할 때도 넣기도 한다
주부 경력 23년차에 내 손으로 처음 만들어 본 똥 딴 멸치 고추장 볶음을 만들었다
( 멸치 똥 딴게 뭐라고 왜 이리 강조하는지 말입니다 ㅋㅋㅋ)
울 엄마의 정말 매콤 하니 맛 있는 엄마표 멸치 고추장 볶음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그래도 맛있다
그리고 칼슘 덩어리인 멸치 머리를 그냥 버릴 순 없잖아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팬에 가볍게 볶은 후 믹서로 곱게 갈았다
천연 조미료로 쓸 생각이다
그리고 문제의 멸치 똥은 쓰레기 통으로 직행하기 직전에 문득 떠 오른 생각이
아! 멸치 똥이 영양가가 많다고 했지
아무리 영양가가 있다고는 하지만 똥을 먹을 수는 없고 영양가가 많다는데 그냥 버리기도 아깝고 그렇다면야 ….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직전의 멸치 똥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 흙 위에 솔솔 뿌려 주었다
영양분이 많다는 멸치 똥을 우리 집 마당의 식물들에게 천연 영양제가 될 것 같아서다
아닌가?
뭐 어차피 버릴 건데 마당에 버려서 나쁠 건 없지 않을까?
멸치 똥을 천연 영양제 천연 비료로 쓸 생각하는 나
완전 천재 아냐? ㅎㅎㅎ
멸치 똥 따서 일석 삼조!
멸치 몸통은 맛있고 영양가 많은 멸치 고추장 볶음으로
멸치 머리는 잘 갈아서 천연 조미료로
그리고 멸치 똥은 우리 집 마당 초록이들의 천연 영양제로..
그렇게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완벽한 소비를 했다
멸치 똥을 흡수해서 봄에는 이쁜 초록이들 쑥 쑥 자라나길 기대해 본다
잘 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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