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한국에 간 게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기 전인 2019년 11월이었다
이종사촌 여동생의 결혼식 참석차 우리집 자기야랑 나랑 둘이서 한국을 갔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란 세계적 재앙이 닥칠 줄 모르고 한국에서 결혼식이라 모인 먼 친척까지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것이 마지막 아직은 가고 싶어도 갈수 없는 한국이다
그런데 기쁘면서도 개인적으론 약간 슬픈 일이 있다 (사실은 엄청 기쁜 일 ㅎㅎ)
사촌형제 중 막둥이가 장가를 간단다
그.... 런.... 데.... 코로너로 갈 수가 없다 ㅠㅠㅠㅠ
물론 맘만 먹으면 못 갈것도 없다
한국에서 2주간 자가격리 일본에서 2주간 가자 격리를 한다면야..
하지만 직장인에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이다
사촌형제 중 막둥이 동생
나이 차이가 15년쯤 나니 사촌들 중에 제일 추억이 없다
그 녀석이 철이 들 무렵엔 난 집을 떠나 서울에서 객지 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리곤 일본으로 건너와 산지 벌써 20년이니 사촌 동생이긴 하지만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거의 없다
하지만 사촌동생의 아버지인 울 막내 삼촌..
우리 아빠가 장남이어서 막내 삼촌은 결혼을 하시기 전까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었다
내가 어렸을 때 사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 세워놓고 꼬네꼬네를 해 주던 삼촌이라
나는 줄곧 막내 삼촌을 꼬네꼬네 삼촌이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작은 아버지가 군대에 갔을 때 휴가를 올 때마다 건빵을 가지고 오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막내 삼촌이 결혼을 하시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래도 난 줄곧 삼촌이라 불렀고 그래서 아버지에게 혼이 났던 기억도 난다
아직 까지 삼촌이라 부르면 어쩌냐고 이젠 작은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지만 내 입엔 삼촌이란 말이 붙어 버려서 작은 아버지란 말이 잘 나오질 않아서
아버지에게 핀잔을 들으면서도 줄곧 삼촌이라 불렀었다
사촌 동생과는 추억이 별로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막내 삼촌과는 추억이 참으로 많다
지난번 이종 사촌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이다
뒤쪽 왼쪽에 키가 훌쩍 큰 아이가 이번에 결혼하는 새신랑인 나의 사촌 동생이다
아이고 이렇게 훤칠하고 잘난 내 동생을 데려가는 새 신부는 복도 많다
오빠가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왔다
사촌동생 중 마지막 결혼인데 그래서 꼭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어서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누나는 그래도 명색이 물 건너 사니까
갑자기 연락하면 못 오니까 너 장가가게 되면 미리미리 연락해
너 결혼식 때 꼭 올 거니까..."라고 했었는데 그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다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결혼식 참석도 못하는 사촌누나와 일본인 매형에게 예단비를 보내왔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멀리 있는 사촌누나랑 매형의 예단비까지 챙기다니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데 미안하게 시리...
이쁜 새신부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어서 아쉽다
동생아 결혼 축하한다
이쁘게 잘 살아
그리고 코로나 진정되면 이쁜 신부랑 같이 일본 놀러 와
누나가 맛난 거 사 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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