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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에 ../히로 이야기

나는 사기나 당하는 멍청한 여자였다

by 동경 미짱 2022.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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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이었다
히로의 고교 친구들이 우리 집으로 놀러 온 날이다
친구들이랑 밖에서 만나 코스트코에 들려 자기네들이 먹을 것들을 사 오겠다며 히로가 집을 나선 지 30분쯤 지났나 보다
벨 소리에 나가 봤더니 택배 아저씨가 작은 봉투를 하나 들고 시계인데 착불이라고 35,000엔을(35만 원) 달라고 했다
수취인을 보니 내 이름이다
나는 일본에서의 모든 증명서 및 모든 것이 ( 회사는 물론 의료보험, 운전 면허, 통장 어쨌든 모든 게..) 한국 이름인데 유일하게 히로가 가지고 있는 카드로 아마존에서 결제하면 받는 사람이 히로가 아닌 남편의 일본 성에 내 한국 이름으로 되어 있다

홍 길동이 아닌 다나까 길동 이런식으로 ...
이유는 모르겠다
히로가 대학 입학 후 학생 대상의 신용 카드를 발급받았고 무슨 이유에선지 히로가 뭔가를 주문하면(아마존에서 쇼핑을 할 때) 히로 이름이 아닌 내 이름(다나까 길동)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대학 입학 후 히로가 시계를 사 모아서 내가 혼낸 적도 있었고
월요일 친구들과 스노 보드 타러 갈 계획이었기에 옷이며  고글이며 주문을 해서 지난주 3번의 택배가 있었다 (히로가 시계를 사 모으는 취미에 택배도 많았기에 의심을 할 수가 없었다)

택배 기사가 물품은 시계이고 착불이니 3만 오천 엔을 달라고..
나 : ( 이름 확인 후) 이런 게 올 거란 얘기 못 들었는데
기사 : 조금 전에 곧 도착한다고 메일 보냈어요
        이름이랑 주소 맞죠

시계를 사 모으는 취미가 있고 요 며칠 새 택배가 빈번했고 그래서 아무 의심 없이 아들놈 욕을 바가지 바가지 하면서 착불로 돈을 지불했다
( 여기서 첫 번째 실수.. 본인이 지금 집에 없다며 수령 거부를 했어야 했다)

그리곤 시계를 받아 들고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자기야에게 히로 욕을 바가지로 했다
: 자기야 히로 또 시계 샀나 봐
  너무 하지 않아?   끝이 없어.
겨우 대학 1학년이 도대체 시계가 몇 개야.
내가 말하면 좋게 말 못 할 것 같고 그럼 싸움될 것 같으니까 자기가 히로에게 좀 뭐라 그래
자기야 : 음 … 알았어.  좀 심하긴 하네
:  좀 이 아니라 아주 많이야. 그것도 착불이야
착불이면 최소한 언제 올 거고 얼마라고 말은 해야 하는 거 아냐
집에 현금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히로에게 화는 잔뜩 났지만 그날은 친구가  오니  그렇게 넘어가고 시계는 내가 감추어 두고 주지 않고 다음 날  엄청 화를 냈다
(두 번째 실수.. 시계를 감출게 아니라 바로 내놓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상하다는 걸 알았을 텐데 )

착불이면 착불이다 금액이라도 미리 말을 해야지 도대체 무슨 짓이냐고
히로는 착불? 카드로 계산한 것 같은데..
착불 그게 뭔데?라는 반응이었고 그런 반응이
나를 더 화나게 했다
카드 지급인지 착불 인지도 모르고 시계를 샀니?
넌 근본적으로 금전 감각에 문제가 있어 …
(세 번째 실수.. 화를 낼게 아니라 히로에게 자초지종을 들었어야 했다)

결론은 자기가 잘못했고 더 이상 시계를 사지 않을 것이며  돈도 쓸데없는
낭비하지 않겠다로 났지만  나는 며칠째 히로에게 고운 시선을 보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월요일 히로는 스노 보드 여행을 떠났고 화요일에서야 감춰 두었던 시계를 식탁 위에 올려 두고  나는 출근을 했었다
퇴근하고 오니 택배 포장지는 벗겨져 있었고 시계 상자는 그대로 식탁 위에 있었다

시계만 꺼내 가고 상자는 그대로 두었나 보다 했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빈 상자를 정리하려고 열어 보니 시계가 그대로 들어 있었다
히로에게 왜 시계를 안 가져가냐고 물으니 자기 시계가 아니란다
그럼 식탁 위에 있는 이건 뭐냐고 했더니 모른다고 아빠가 시계를 산 거 아니냐고 하고
그래서 자기야에게 시계를 샀냐니 "내가 시계를 왜 사"

뭐지?
그때서야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 이거 니가 산 거 맞잖아
히로 : 아니 내가 산 건 토요일 오전에 택배가 와서 내가 받았어
: 이거 엄마 일본 이름으로 온 건데 이건 니가 시키는 거밖에 없어
히로 : 난 오전에 직접 수령했다니까
뭐야 이건? 히로는 쇼핑 목록을 살폈고 쇼핑 목록에 없는 시계
: 그럼 오전에 수령한 거 착불인지 카드결재인지 결재 방법이 뭐 였는지 찾아봐
히로 : 역시 카드 결제야
난 엄마가 착불이라고 해서 뭔 말인지 이유를 잘 몰랐어
나 : 이거 진짜 니가 시킨 거 아냐? 같은 시계가 두 개 온 거 아냐?
히로 : 아니야 난 이런 시계 시키지 않았어. 메이커가 달라

지금까지 히로는 시계나 물건을 항상 아마존에서 샀는데 이번엔 아미존이 아닌 시계의 공식 사이트에서 처음으로 샀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아마존이랑 다른 방식의 카드 결제가 아닌 착불인 건가 생각했다고 한다

문제는 벌써 택배 봉투는 버리고 없다는 거다
봉투 안에 시계 상자만 하나 달랑 들어있었고 어떤 설명서도 회사에 관한 정보도 종이 쪼가리 하나 들어 있지 않으니 이 시계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왔는지 알 수가 없다


택배 상자 안에는 시계 상자와 시계 하나 달랑

명색이 로렉스란다
하하하
물론 100% 가짜

이렇게 두 눈 멀쩡히 뜨고 나 당한 건가ㅠㅠㅠ

우연에 우연이 겹친 최악의 상황

일단 왜 하필 히로가 집을 나간 지 30 분 후에 히로가 없을 때 택배가 왔나
그리고 왜 하필 오전에 히로가 수령한 그 시계와 가격이 비슷한가
왜 하필  그날 히로 친구들이 집에 왔나( 친구들만 없었어도 그날 바로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 내가 화가 나서 시계를 감추었나 (감추지 않았으면 시계가 두 개란 걸 히로가 오전에 시계를 수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왜 하필 그런 일이 있고 ( 엄마의 잔 소리에 서로 감정이 안 좋아 대화가 줄어든 이때에 ) 히로는 여행을 떠났는가
왜 하필 히로는 택배 봉투를 뜯어보았는가 ( 뜯지 않았다면  갖고 싶어 산 시계를 왜 뜯지도 않냐고 물어보고 그 단계에서 이상 하단 걸 알았다면 택배 봉투에 적힌 발신처의  정보를 알 수 있었을 텐데.. 물론 적혀 있는 정보가 가짜일 확률이 높겠지만 …)
왜 하필 어제가 쓰레기 버리는 날이라서 택배 봉투를  버렸나 ( 하루만 빨리 알았어도 쓰레기 뒤져서라도 그 봉투를 찾았을 텐데 … 이것 역시 발신인의 정보가 가짜일 확률이 높지만 )

왜 하필의 연속이었다
결국 사기를 당한 것 같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

같은 날 시계라는 같은 품목에 몇 백 엔 차이나는 거의 비슷한 가격에 우리 집 주소에 내 이름 ( 보통은  쓰지 않는 히로가 아마존에서  거래할 때만 쓰이는 이름)으로 본인인 히로가 없는 시간에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
눈 뜨고 코 베인다더니
내 집안에 가만히 앉아서 당한 이건 분명 사기…
난 절대 사기는 안 당할 줄 알았는데 혼자 똑똑한 척 다 했는데 이렇게 멍청하니 당하다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택배 기사는 진짜 택배 기사였을까?
어찌 생각해 보면 무섭다 …

당장 히로에게는 아마존 비밀 번호를 바꾸라고 했다

: 우와 진짜 이 나이에 수업료 내고 인생 공부 제대로  했네. 차라리 이름 없는 시계가 낫지 로렉스가 뭐니 로렉스가..
히로 낼부터 차고 다녀 3만 오천엔 본전 뽑아야지
히로 : 엄마 이거 정품이면 백만 엔(천만 원)이 넘어
내가 차고 다니면 다들 가짜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빠가 차고 다니면 진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아빠가 차야지
: 하긴 니가 차면 정품이라도 가짜라 생각하겠지
그럼 이건 아빠 줘야겠네.
아빠가  과연 차고 다닐까. 안 차고 다닐 거 같은데

멍청한 나는 집 안에 앉아서 사기를 당했다
현금으로 착불로 내기에 과하지도 않는 3만 5천 엔이란 금액으로 속으면 좋고 안 속으면 말고  그렇게 찔러본 걸까
설마 히로가 집 나가지 30분 그걸 누가 알고 딱 그 시간을 노릴 수 있을까
속은 건 속은 거고 사기당한 건 사기 당한 거고  어찌 된 건 그 진상을 알고 싶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정보가 유출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보가 유출되었다니 생각하니 무섭다
주소 알고 이름 알고 뭐 산지 알고 가격까지....

음 … 어차피 사기라면 여자 시계 보내주지
그럼 내가 차고 다닐 텐데 … ( 물론 농담임 어쩌겠냐고
어차피 일어 난 일인걸 )

이번 사기 사건으로 얻은 교훈
무조건 대화가 최고다
히로가 시계를 샀다고 말했다면
내가 화를 내지 않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앞으로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도 가족 모두에게 이야기하고 공유하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또
앞으로 우리 집인 무슨 이유이건 착불은 절대 하지 말 것을
그리고 아마존뿐 아니라 모든 비밀 번호 재 설정하고 무조건 의심 또 의심하기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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